이사장 인사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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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18-10-19 16:43 작성일 조회1,066회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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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으로부터 426년 전 전라좌수사 이순신은 전라우수사 이억기와 연합함대를 구성해 여수 앞바다에서 20여 일간 합동군사훈련을 수행한 뒤 1592년 9월 28일 전라좌수영을 떠나 부산포를 향해 수백리 먼 길로 출전에 나섭니다. 당시 부산포는, 왜적이 조선침략의 전초기지로 삼는 그들의 소굴이었기에 부산포에 진치고 있는 왜적을 격파하는 것이야 말로 나라를 지켜내는 결정타가 될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누가 시키지도 않았고, 맞서 싸워야 할 적선의 수가 아군의 열 배 가까이 되었으며, 항해하는 거리가 다른 대첩로의 두배가 넘는 길이어서, 패전의 부담이 어느 전투보다 컸지만 구국일념에 불타있던 이순신은 스스로 이 일을 기획하고 준비했던 것입니다.
준비를 마친 이순신의 연합함대는 다음날 삼천포를 지나 당포(지금 통영 산양읍 삼덕리)에서 원균의 경상우수군과 합류합니다. 여수를 출발한지 6일째 되는 10월 3일에는 가덕도 천성에 이르러 부산에서의 첫 밤을 지냅니다. 다음날 4일 낙동강 하구에서 적선 6척을 깨 불태운 뒤, 가덕 북쪽 동매산 아래로 들어와 다시 한 밤을 지내며 내일의 전략을 토의합니다.
마침내 1592년 10월 5일!
새벽에 동매산을 출발한 우리의 연합함대는 몰운대를 지나면서 적선 24척을 불태우며 승승장구 부산 앞바다로 나아갑니다. 쾌속정을 보내 영도 안팎을 샅샅이 수색한 뒤 초량목(지금 영도다리 놓인 곳)을 지나서 자성대 앞에서 북항쪽에 걸쳐 정박해 있는 왜적 선단을 향해, 거북선을 앞세우고 장사진을 쳐서, 용감무쌍하게 진격합니다. 부산포에 늘어선 500여척의 적선 속으로 돌격해 들어간 조선수군은 적선 백수십 척을 통쾌하게 깨버립니다. 그래서 적들로 하여금 간담이 서늘해지고 몸을 움츠리며 두려워서 벌벌 떨게 만든 뒤 해가 저물어서야 전투를 끝내고 돌아오는데, 우리는 10월 5일에 거둔 이 위대한 전투를 부산대첩이라 합니다.
부산대첩은 이순신이 거둔 임진년 4대 승첩(옥포승첩, 당포승첩, 한산대첩, 부산대첩) 중 마지막 승첩으로, 조선 수군이 제해권을 완전히 장악하는 종결전입니다. 이로써 수륙병진 전략을 세워 조선을 침략해 왔던 왜적은 결국 바다를 얻지 못해 절름발이가 되는 바람에 임진 7년 전쟁에서 패해 돌아가고 맙니다. 그러니 부산 대첩은 우리가 바다를 지켜냄으로써 나라 전체를 구한 소중한 승첩으로서 후손들이 길이 기념해야 할 역사적 쾌거입니다.
뿐만 아니라 이순신이 왕에게 보낸 승첩장계에서, 「전후 네차례 열번의 접전에서 번번히 승첩을 거두었으나, 장수들의 공로를 논한다면, 부산대첩보다 더 큰 것이 없었습니다.」라 할 정도로 역대 승첩 중 가장 많은 적선을 깬, 전적 면에서도 최대의 전투였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그 동안 부산대첩이 지닌 이러한 역사적 의의를 제대로 인식하지도 못했고, 이 정신을 계승하는 일에도 관심이 없었습니다. 유감스럽게도 우리는 수 백 년간 자랑스런 이 승전기념일 10월 5일을 까맣게 잊고 있었던 것입니다.
세계 각국은 자기 나라를 지켜낸 승전기념일을 잊지 않고 기념할 뿐 아니라 그 승전의 공간에 이를 기념하는 기념관을 세우고, 그 정신을 기리는 다양한 기념사업들을 계속하고 있습니다. 한 국가의 존립과 번영은 기본적으로 안보로부터 시작된다는 중요한 국가의 가치관이 작용하였기 때문입니다.
비록 늦었지만 지금부터라도 우리는 부산대첩의 역사적 의의와 정신을 찾아내고 이를 계승해나가는 사업을 시작해야 합니다. 그리고 이 사업은 우리 부산시민들이 주체가 되고 부산북항터를 중심으로 전개되는 것이 가장 옳습니다.
일찍이 부산의 선각자들은 1979년 부마민주항쟁으로 민주주의를 쟁취한 1980년에 부산대첩일인 10월 5일을 부산시민의 날로 정했고, 그때 이후 38년간이나 이 날을 부산시민의 날로서 기념해 옴으로써 이순신과 역사적 인연을 맺었습니다. 그런데도 지금 대부분의 부산시민들은 이 날이 어떤 역사적 배경에 의해 정해져 기념하고 있는지, 또 이순신 장군과 부산이 어떤 인연이 있는지조차 모르고 있으니, 문화시민으로서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경제를 발전시켜 물질적으로 풍요로움만 추구한다 해서 행복한 문화도시가 될 수 없습니다. 경제적 번영에 걸맞는 인성적, 정신적 건강이 함께해 나가야 행복한 문화도시가 될 수 있습니다.
이미 이순신은 부산대첩과 부산시민의 날 제정을 통해 우리 부산과 역사적 인연을 맺었습니다. 부산대첩의 밑바탕에 깔려있는 그의 정신을 받아 들여 부산의 정신으로 수용하고 현재화하는 것이야 말로 우리의 후손들에게 다시는 외세에 흔들리지 않는 자주국가를 세워 나갈 정신과 가치를 심어주는데 있어서나 우리 부산이 행복한 문화도시를 건설하는데 있어서 아주 긴요한 일이라 생각됩니다.
이러한 인식 아래 우리는 건강하고 품격있는 문화도시 부산건설을 기치로 이 기념사업회를 발족하였고 지난해 9.27 이순신과 부산을 사랑하는 시민들이 함께 모여 발기인 대회를 열었으며, 그 결의에 따라 조직을 구성하고 정비해 마침내 오늘 창립을 맞게 된 것입니다.
아울러 우리의 이 사업은 장소적 거점이 있어야 원활한 수행이 가능합니다. 앞으로 부산대첩기념사업회의 센터로 기능할 부산대첩기념관은 안보의 성지요 대첩지인 북항터에 세우는 것이 가장 옳습니다. 물론 그럴 형편이 못되면 그 부근의 장소에 건립해도 되겠지만 다행히 지금 부산 북항터에는 아직도 국가와 부산을 위해 활용할 충분한 공간이 남아있습니다.
그렇다면 호국의 성지 북항터에다 대첩기념관을 세워 한편으론 세계에 자랑할 부산의 새 기념물을 창조하고, 다른 한편으로 대첩의 역사와 그 주인공인 이순신의 정신을 교육할 도장으로 삼는다면 앞으로 뻗어나가는 해양수도 부산의 앞날에 멋진 축복이 될 수 있고, 부산과 부산시민의 격조를 한 단계 끌어올리는 쾌거가 될 수 있습니다.
부산대첩의 이 위대한 역사적 의의를 알게 된 이상 우리는 머뭇거리지 말고 함께 이 기념사업에 착수합시다. 그리고 이 사업을 시민문화, 정신운동으로 키워 나갑시다. 그리하여 건강하고 품격있는 문화도시 부산을 우리 시민들이 주체가 되어 만들어 봅시다. 우리가 하나로 뭉친다면 이 사업은 성공할 수 있습니다.
감사합니다.
2018. 4. 27
시민과 함께하는
사단법인 부산대첩기념사업회
이 사 장 김 종 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