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CBS피플 인사이드 남송우 교수 인터뷰 1 (2022.3.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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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22-04-04 10:23 작성일 조회2,463회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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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CBS 피플 인사이드 남송우 교수 인터뷰 1
2022.03.23.(수)
○ 내 용 :‘불안의 시대, 위태로운 미래... 이순신을 권한다’
사회자
매주 수요일 사람들 그리고 그들이 품고 있는 이야기 속으로 한 걸음 더 들어가 보는 시간 피플 인사이드 함께 합니다.
앞서 소개해 드린 대로 이순신 정신으로 이 위기의 시대를 헤쳐나가자며 희망과 용기를 전하고 있습니다. 이순신 학교 교장을 맡고 계신 분인데요.
남송우 부경대 명예교수 스튜디오에 모셨습니다.
교수님 안녕하세요!
남송우 교수
예. 안녕하십니까!
사회자
먼저 부산여해재단 그리고 이순신 학교 소개부터 좀 해주시죠.
남송우 교수
‘여해’라는 것은 이순신의 호인데 그 정신을 기리기 위해서 조직된 재단이 부산여해재단입니다. 부산여해재단은 2016년 재단으로 설립이 됐는데 일단 사단법인이죠.
그동안 2014년부터 김종대 전 재판관이 주도하셔서 이순신 강사 아카데미 학교를 열었습니다.
그래서 2014년, 2015년 2기를 수료한 이순신 아카데미 수료자들을 중심으로 부산여해재단을 설립하게 된 것입니다. 그리고 부산여해재단에서는 여러 가지 사업을 구체화했는데 그 사업 중에 아주 중요한 사업의 하나가 이순신 정신을 교육한다, 교육을 위해서 이순신 학교를 운영한다는 중요한 사업 내용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부산여해재단에서는 이순신 정신을 일반인들에게 그리고 청년들에게 더 나아가서는 학생들에게 ,다양한 각계 각층의 사람을 대상으로 교육하기 위해서 이순신 학교를 만들게 된 것입니다.
사회자
네. 그런데 부산에서 웬 이순신 이렇게 하실 수도 있을 것 같아요.
이순신 장군, 부산과도 꽤 인연이 있다고 하는데 맞습니까?
남송우 교수
일반 시민들은 그 역사적인 인연을 잘 이해하고 있지 못하지만 사실은 엄청난 깊은 인연을 가지고 있습니다.
사회자
부산과 이순신장군이 인연이 있군요.
남송우 교수
1592년 임란이 발발하고 난 뒤에 이순신 장군이 준비를 해서 그해 음력으로 9월 1일 날 수군연합군을 지휘해서 부산포에 몰려 있던 일본 왜군들을 부수러 나왔습니다. 그래서 9월 1일날 부산포에서 전투가 이루어진 겁니다. 그 당시 하루 동안에 100여 척의 왜선을 격파한 이순신의 왜전사로 보면은 아주 큰 대전을 치르었습니다. 그게 일명 ‘부산대첩’이죠. 그런데 이 ’부산대첩‘은 그동안 상당히 많은 사람들 특히 부산 지역에 있는 사람들에게는 잊혀져 있었는데 이 날을 부산시에서 1980년도에 부산 시민의 날로 정했습니다.
여러 부산 시민의 어떤 상징성을 띄는 날을 한 6개 정도 두고 많은 의견들을 수렴해서 최종 결정한 날짜가 네 10월 5일이었습니다. 왜 10월 5일이냐하면은 이순신 장군이 부산대첩을 통해서 큰 왜전을 쳐부셨던 그 날을 기념하는 날입니다. 그래서 사실은 부산 시민의 날이 바로 부산대첩, 승전의 날을 기념하기 위해서 만들어졌기 때문에 아주 역사적인 날이기도 하고 부산하고는 아주 깊은 인연을 가지고 있는 날이죠.
사회자
이순신 장군과 부산과의 연관성, 인연 굉장히 뜻깊은 또 부산대첩을 통해서 연결되어 있다라고 생각하면 될 것 같고요. 이번에는 좀 교수님께 질문드리고 싶은데, 교수님께서는 어떻게 이런 교장직을 맡게 되셨는지, 또 개인적으로 이순신 장군에게 관심을 갖게 된 계기가 있다면 뭔지 궁금합니다.
남송우 교수
조금 전에도 말씀드렸지만 김종대 전 헌법재판관이 평생동안 이순신 연구를 계속해 오시다가 책을 저술해 냈습니다. 그게 '신은 이미 준비를 마쳤나이다'라는 제목의 책이었는데 책이 출판되고 난 다음에 책이 알려지면서 김종대 재판관님은 특히 서울과 부산에 2014년부터 이순신 아카데미 강좌를 열기 시작했습니다. 그 때 저는 1기에는 참여를 못하고 2015년 2기를 모집할 때 이 아카데미에 참여를 했습니다.
사회자
그럼 교수님도 학생이셨군요?
남송우 교수
네. 1년 동안 공부를 했죠. 공부를 하면서 제가 평소에 생각하지 못했던 이순신 장군의 어떤 정신의 가치를 새롭게 인식하게 됐고 이 정신이야말로 우리가 앞으로 계속 계승해 가야 될 가치있는 정신이다라고 생각을 했습니다. 그래서 이순신 학교가 개설되면서 제가 교장직을 흔쾌히 맡고 일을 시작한 것입니다.
사회자
이번에는 좀 이순신 장군 얘기를 좀 여쭤보고 싶은데 사실 이순신 장군이라고 하면 세종대왕과 더불어서 한국인이 가장 존경하는 역사 인물로 꼽히잖아요.
워낙 그 생애가 드라마틱하고 또 업적이 놀랍기도 하지만 이렇게까지 독보적인 인기를 누릴 수 있는 까닭을, 교장선생님은 어떻게 생각하세요?
남송우 교수
사실 세종대왕도 엄청나게 많은 치적을 남긴 모든 국민들이 추모하고 존경하는 분들 중에 한분이죠. 그런데 이순신 장군이 가지고 있는 더 많은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을 수 있는 힘은 세종대왕은 평생 나라를 다스리면서 죽음을 무릅쓰고 뭔가를 한 일은 없었습니다.
그러나 이순신 장군은 그 위기의 시기에 자기의 하나밖에 없는 목숨까지 바쳐가면서 나라를 구했다라고 하는 것 이것은 어떻게 보면 세종대왕보다도 더 강한 나라를 사랑하는 마음이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되고 그런 입장에서 자신을 완전히 헌신한 그런 측면에서 이순신 장군을 더 높이 평가하는 지점이 될 수 있지 않겠는가 그런 생각을 했습니다.
사회자
위기의 시기에 죽음을 무릅쓰고 자신을 헌신하는 모습 참 모든 국민들이 이 이순신 장군의 이런 모습을 보고 반하지 않았나, 존경하지 않나라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그런데 일각에서는요. 군사정권의 정당성 확보 차원에서 이순신 장군을 국가주의 또 민족주의 아이콘으로 내세워서 정치적으로 활용해 온 역사를 지적하기도 합니다. 그리고 이게 이순신의 본질, 본모습을 오히려 가려온 측면도 있지 않나 싶은데 이건 어떻게 보세요?
남송우 교수
사실 그런 측면이 많죠. 역사상 위대한 인물이었던 이순신 장군을 어떻게 보면 수단화한 측면을 무시할 수가 없습니다. 그렇게 할 수밖에 없었던 것은 이순신 장군이 군인이었기 때문에 쉽게 활용할 수 있는 측면도 있었죠. 그래서 오히려 그런 방식으로 정치적으로 활용을 했기 때문에 사실은 그 이후에 이순신에 대한 연구가 많은 역사학자들로부터 외면을 당했습니다.
그 이후에 이순신을 연구하면 뭔가 좀 그 어떤 군사 정권의 상징이 되었던 그런 인물에 대한 연구라고 하는 것이 오히려 모호하게 연구해서는 안 될 사람을 연구하는 것처럼 이런 분위기들이 상당한 기간 동안 지속되어 왔기 때문에 지금 역사학 쪽에서 이순신에 대한 연구 자료를 살펴보면은 본격적인 이순신의 어떤 정신이나 가치나 이런 측면에 대한 연구는 그렇게 논문이 많지 않습니다.
거기에 비해서 상대적으로 이순신이 왜적을 무찌르면서 감당했던 많은 전투들 ,그 전투에 관련된 전쟁사적인 측면에서 군사 전략이라든지 이런 측면에서의 연구는 상당히 많이 되어 있습니다. 그러니까 역사적인 어떤 군사학이라고 하는 측면에서는 이순신에 대한 연구는 해군 사관학교라든지 또 다른 어떤 국방부 산하 연구기관 등에서 연구가 많이 되었지만 이순신에 대한 삶의 본질적이고 정신적인 가치에 대한 연구는 오히려 역사 연구자들이 많이 연구를 해 줘야 되는데 상당 부분 그런 영향 때문에 정치적으로 수단화 됐기 때문에 이순신 연구를 금기시하다시피 한 그런 측면들이 상당 부분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 측면에서 사실은 이순신 연구는 이제 좀 본격적으로 본질적인 그 인간에 대한 연구가 이제 다른 차원에서 시작되야 될 그런 지점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사회자
그래서 이순신 학교가 필요하지 않나라는 생각이 드는데요.
이순신 학교는 어떻습니까? 이순신 장군의 어떤 부분을 좀 주목하고 또 어떤 부분들을 좀 학생들한테 가르치는지 궁금합니다.
남송우 교수
사실 제가 김종대 전 헌법재판관님의 책을 중심으로 해서 공부를 하면서 배웠던 것은 이순신 장군의 탄생에서부터 마지막 전사 장면까지 역사적인 어떤 기록, 역사적인 사실들을 공부도 했지만 그런 일대기 속에서 이순신이 위대한 한 영웅으로서 삶을 살아갈 수밖에 없었던 정신적인 가치, 그가 유지하고 있었던 어떤 삶의 태도 이런 어떤 부분에 대해서 깊이 공부를 하고 논의를 했습니다. 그래서 이순신 학교에서도 마찬가지로 이순신 장군의 어떤 탄생에서부터 전사까지 일대기를 역사적 사실에 기초해서 역사적 사항들을 공부하기도 하지만 그런 사사건건 속에서 이순신이 어떻게, 어떤 정신을 가지고 대응해 갔는지 어떤 가치관으로 삶을 살아갔는지 그런 부분에 주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는 것이 주 교육 내용이고 그 구체적인 가치 개념을 아주 함축해서 설명한다고 하면은 크게 네 가지로 이렇게 요약 설명할 수가 있습니다.
사회자
짧게 좀 부탁드려요.
남송우 교수
첫째는 사랑입니다. 이순신의 그 삶을 이렇게 보면은, 자신에 대한 사랑은 모든 인간들이 다 가지고 있지만 그걸 넘어서서 이웃을 사랑하고 자기가 처해 있는 어떤 사회를 사랑하고 나아가서 국가를 근본적으로 사랑하는 그런 삶의 자세로 살아간다는 것입니다.
이순신의 삶의 가치의 근원에 놓여 있는 것이 사랑이라는 거죠.
사회자
가장 베이스군요.
남송우 교수
예. 그 다음에 또 하나는 모든 일을 하면서 정성을 다했다는 것입니다. 이 정성을 다했다는 것이 말만으로 끝나지 않고 구체적으로 몸으로 실천을 했다는 것이고 그런 정성 속에는 뭔가 미리미리 준비하는 삶을 살아간다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 다음에 또 중요한 것 중에 하나는 공평하고 정의로움을 추구했다는 것입니다. 의롭지 않은 것 바르지 않은 것에 대해서는 어떤 힘으로 누군가 저항하더라도 그것을 받아들이지 않고 버티는 어떤 힘을 가지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마지막은 자력입니다. 자력은 어떤 힘이 있는 사람이나 그런 권력에 의지하지 아니하고 자기 스스로 힘을 키워서 뭔가 주어진 일들을 감당해 갈 수 있었다라고 하는 것, 그래서 사랑과 정성과 정의, 자력 이것이 이순신이 살아가면서 우리에게 남긴 정신적 가치이다라고 일단 결론을 내리고 그런 가치에 대해서 이순신 학교에서는 학생들과 토론을 하면서 같이 체득하는 그런 과정으로 공부를 하고 있습니다.
사회자
사랑 정성 공평 정의로움 자력 이 네 가지는 지금 우리 시대에 살고있는 저희에게도 좀 많이 필요하지 않나라는 생각도 드네요.
또 궁금한 건요 익히 알려진 일화 외에 이순신 장군님의 좀 뭔가 이런 네 가지가 담긴 숨은 비화가 있다면 어떤 것들이 있을까요.
남송우 교수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한 번은 자기 상관이 관에 있는 오동나무를 베어가지고 활용하려고 요청을 했을 때 이순신은 그걸 한마디로 거절을 했습니다.
사회자
상관의 지시을 거절했다는 거군요.
남송우 교수
이건 공물이고 사사로이 개인적으로 사용해서는 안 된다라고 했습니다. 그렇게 해서 미움을 받기는 했지만 공의로움 그리고 나라를 먼저 생각하는 이 선공후사의 정신으로 그의 삶을 보여주었죠.
사회자
나무 한 그루도 나라의 재산이다라고 생각한 거군요.
남송우 교수
그런 일들은 숱하게 많은 일화로 남겨져 있습니다.
<계속>
* 라디오인터뷰 링크 : https://soundcloud.com/cbs-14609860/220323a-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