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순신의 지도자상 다시 소환할 때" (국제신문 2021.2.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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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21-02-26 15:26 작성일 조회1,200회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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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시장 보궐 선거 운동이 한창이다. 예비후보로 거명되는 인사들의 공약과 인물 홍보물들이 온라인상에 차고 넘친다. 홍보물을 들여다보고 있으면, 이 땅에 이렇게 위대한 지도자들이 많이 있었나 하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다. 이들이 내건 공약들에는 한반도가 천지개벽할 일들이 많다. 이렇게 자칭 지도자들이 많았는데, 부산의 사람살이는 왜 갈수록 나락으로 빠져들고만 있었는가 푸념도 하게 된다.
시대가 어려울수록 사람들은 새로운 지도자를 원한다. 한국근현대사에서 나라가 위기에 처할 때마다 가장 자주 소환된 인물이 있었다. 그가 이순신이다. 그는 왜 국가가 풍전등화와 같은 절망의 순간에 항상 소환되는 인물이 되었을까? 그가 보여준 삶의 자세 때문이다. 이순신 같은 지도자가 다시 나타나면, 나라가 위기로부터 벗어날 수 있을 것이라는 믿음이 있었다. 이 믿음은 그가 전투에서 보여준 전무후무한 전력 때문이기도 하지만, 이것이 전부가 아니다. 이순신의 삶이 보여준 인격이 이런 믿음을 가능하게 한 것이다. 그러면 이순신이 보여준 인격 형성에 기저가 된 삶의 정신은 무엇인가?
필자는 부산여해재단 산하에 설립된 이순신 학교를 몇 년간 운영했다. 젊은 세대들과 함께 공부하면서, 우리가 그 동안 제대로 인식하지 못한 이순신 정신을 새롭게 각성하는 계기가 되었다. 젊은 청년들을 대상으로 김종대 전 헌법재판관이 쓴 ‘신은 이미 준비를 마쳤나이다’를 중심으로 공부를 했다. 이순신에 관한 책들이 수백 권이 있지만, 이 만큼 이순신의 삶의 가치를 정신적인 차원에서 해명한 책은 없다.
이 책은 이순신의 선공후사 솔선수범 유비무환 신상필벌 진인사대천명 소통 용기 등과 같은 지도자상이 어디로부터 발원하고 있는지에 대한 근원적 뿌리다. 그 뿌리인 이순신의 정신 가치는 크게 네 가지로 요약된다. 사랑 정성 정의 자력이다. 이 네 가지 가치가 이순신을 단순한 장수가 아니라, 민족의 스승이 되게 만든 근원적 힘이 었다는 것이다.
이순신의 전 생애를 살펴보면, 그의 모든 관계의 토대는 사랑이었다. 그의 사랑은 가족을 넘어 자신이 거느리고 있던 군사들에게로, 그와 만나는 일반 백성으로 나아갔으며, 이 땅의 산하와 나라에 대한 사랑으로 무한히 번져 나갔다. 그의 사랑의 극치는 노량의 마지막 전투에서 죽음으로 승화되었다.
또한 이순신이 품은 정성은 그가 모든 일을 성공적으로 완수할 수 있는 근원적인 힘이었다. 그에게 정성은 일이 있기 전에 철저히 준비하는 것으로부터, 일이 있을 때는 목숨을 걸고 그 일에 전심전력했으며, 일이 끝나면 그 결과를 담담히 받아들이는 것으로 나타났다. 명량해전에서 기적적인 승리를 거두고도 이순신은 “이는 오직 하늘이 도운 것이다”며 결과에 초연했다. 상을 내리지 않은 선조에 대해 한 마디의 불평도 없었다.
그리고 이순신은 구국의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목적이 아무리 좋다 해도 부정한 방법과는 절대로 타협하지 않았다. 진실을 가장해서 꾸밈과 꼼수를 쓰지 않았고, 옳고 바른 길이면 그 길이 아무리 힘들고 고통스러워도 좌고우면하지 않았다. 이순신의 성공이 이 같은 정의에 바탕을 두었기에 그의 성공은 결코 무너지지 않았던 것이다.
그리고 이순신은 어떤 어려운 일을 만나더라도 그 문제를 자력으로 해결해 나갔다. 권세있는 이에게 아첨하거나 권력에 의지해서 해결해 나가려 하지 않았다. 자주, 자립의 정신으로 모든 문제를 헤쳐나갔다. 이순신은 이렇게 사랑 정성 정의 자력의 가치를 온몸으로 실천함으로써 온갖 위기를 극복하는 백전백승의 지도자로 우뚝 설 수 있게 되었다.
이제 우리는 부산이 처한 위기를 기회로 바꾸어 나갈 제대로 된 지도자를 뽑아야 할 때가 가까워지고 있다. 이 시대에 이순신과 꼭 닮은 지도자가 있다면 얼마나 다행일까? 현실이 그렇지 못하다면 차선으로 이순신이 가졌던 정신과 닮아 있는 자를 지도자로 선정해도 좋지 않을까? 이런 점에서 아직도 부산시민의 날이 부산대첩기념일이라는 사실조차 제대로 알지 못하고 있는 시민에게, 역사 속의 이순신 행적을 지금 이곳의 의미로 해석해 내는 공부가 그 어느 때보다 절실하다.
부경대 명예교수·문학평론가
[출처 : 국제신문] http://www.kookje.co.kr/news2011/asp/newsbody.asp?code=1700&key=20210225.22018006444